‘윤석열 왕국’ 꿈꿨다…포고령·노상원 수첩으로 본 내란의 실체
내란 365일내란 뒤 국회·언론 ‘포박’하고 반대파 ‘수거’2024년 12월3일 밤 10시23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대국민 긴급담화로 1979년 이래 역사에 봉인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4분 남짓한 담화에서 그는 비상계엄을 두고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구국을 위한 결단이라고 강변했다. 밤 11시 기준으로 ‘계엄사령부 포고령(1호)’가 발령됐다. 제목을 포함해 464글자로 구성된 포고령은 내란 세력이 그날 이후 우리 사회를 어떻게 결딴내려 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초다. 국회의 신속한 계엄 해제 의결, 시민의 단호한 저항, 항명 처벌을 무릅쓴 군인들의 소극적 대응이 아니었다면 헌정 질서 파괴와 민주주의의 붕괴, 기본권의 중대한 침해는 자명한 수순이었다. 끔찍한 상상이다.국회 해산과 부정선거 날조포고령 1항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였다.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당시에도 ‘정치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기는 했지만, 국회와 정당, 지방의회 활동까지 세밀하게 특정해 제한하지는 않았다.윤석열발 포고령에 ‘국회·정당 활동 금지’가 못 박힌 건 2022년 5월 정부 출범부터 시작된 거대 야당과의 강 대 강 대치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의 쟁점 입법 강행, 정부 인사 탄핵, 특검법 처리 등을 두고 “국회가 패악질한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비상계엄을 발령해도 이를 해제할 유일한 권한을 가진 곳이 국회였기에, 반드시 무력화시켜야 할 기관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내란 세력들은 단순히 국회 표결 방해만 시도한 게 아니다. 정치인 등 주요 인사 10여명의 체포·구금 계획까지 세웠고 실행에 나섰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체포조 명단을 전달받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방첩사, 경찰,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관이 섞인 ‘반국가세력 합동 체포조’ 구성에 나섰다. 삼단봉과 수갑, 포승줄, 결속 벨트가 담긴 백팩을 둘러멘 방첩사 수사관 49명은 다섯명씩 한 팀을 이뤄 각기 할당된 정치인 체포를 위해 국회로 출동했다. 계엄 해제 표결이 임박하자, 이들의 목표는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을 눈에 보이는 대로 체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들이 국회를 향하던 시기, 방첩사 요청을 받은 국방부 조사본부는 수도권 내 미결수용실 현황을 파악했고 미결 수용자 이감 준비까지 마쳤다. 법무부 교정본부 또한 수도권 내 구치소의 수용 여력이 3600명 정도임을 확인했다.“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서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해 속속 모이자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방첩사 체포조를 제외하고도 당시 국회에 출동한 특전사 요원이 466명, 수방사는 212명이었다.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이 190명이었으니 4인 1조로 의결 정족수 150명 의원을 끌어내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계엄군은 내란의 밤에 선거관리위원회로도 출동했다. 망상에 빠진 내란 세력은 자신들이 정치적 수세에 몰린 게 부정선거 탓이라고 확신했고 비상계엄을 선포해 이를 확인하려 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필두로 한 ‘제2수사단’은 12월4일 날이 밝는 대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출근하는 직원 30여명을 케이블타이로 포박하고 얼굴에 복면을 씌운 뒤 수방사 벙커로 이송하려 했다. 이들을 위협할 알루미늄 야구 배트와 안대, 밧줄, 작두형 종이 절단기가 준비됐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전부터 “노태악(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내가 처리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이들은 고문과 가혹 행위로 선관위 직원들로부터 부정선거 진술을 받아낸 뒤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기획했다고 발표했을 가능성이 크다.검열의 시대, 빼앗긴 광장포고령 2·3항에서는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지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했다. 비상계엄 당일 밤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서울 서대문구의 여론조사꽃에는 계엄군 100명(특전사 72명, 방첩사 28명) 출동 지시가 떨어졌다. 내란 세력은 여론조사꽃을 ‘가짜뉴스와 여론조작, 허위선동의 핵심’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문화방송(MBC)과 제이티비시(JTBC)에는 당일 자정에 경찰이 들이닥칠 계획이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12월3일 밤 11시37분께 허석곤 전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24시에 경찰이 한겨레 등 5곳에 투입될 예정인데, 경찰로부터 단전·단수 요청이 오면 소방청에서 조치를 해줘라”라고 했다. 경찰이 장악하기 전에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의 보도 기능을 무력화하라는 지시였다. 물리적으로 장악된 언론사에는 계엄군이 검열관으로 상주해 보도를 통제했을 것이다. ‘선관위 부정선거 확인’ 등의 날조된 사건을 대서특필하려면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은 필수적이었다.포고령 4항은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고 했다. 여 전 사령관이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불러준 ‘체포 명단’에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도 포함돼 있었다. 내란 세력은 노동조합을 반국가단체로 몰고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했을 것이다. 정치적 고비 때마다 민주주의 열기가 분출했던 광장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나 전한길씨 등의 놀이터가 됐을 게 뻔하다.윤석열 장기 집권 꿈꿨나윤 전 대통령은 내란이 실패로 돌아가자 ‘경고·호소형 계엄’이었다고 주장했고 내란 핵심 세력들도 향후 구상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포착된 몇몇 증거를 가지고 내란 이후의 세상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지시 문건엔 “국가 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내용이 적혔다. 전두환 신군부가 5·17 계엄으로 국회를 해산시킨 뒤 설치했던 국가보위입법회의 같은 기구다.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헌정 질서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비선 내란 기획자’인 노 전 사령관이 2023년 10월 무렵부터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70쪽 분량의 수첩에는 비상계엄 이후 정국 구상이 드러난다. 그의 수첩엔 “차기 대선에 대비, 모든 좌파 세력을 붕괴시킨다”는 문장이 목표처럼 적혔고 ‘행사 후 국회·정치 개혁’ 방안으로 △민심관리 1년 정도 △헌법 개정(재선~3선) △국가안전관리법 제정 △선거제도 개선 등이 거론됐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 단임제 조항을 고쳐 장기 집권 체제를 꿈꿨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내란 세력은 자신들에게 대적하는 이들을 좌파, 또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다. 노상원 수첩에는 이들을 ‘수거 대상’으로 표현했고 처리 방안도 적혔다. 수첩에는 △일반전초(GOP)선상에서 피격 △연평도 등 무인도로 이동시켜 폭파 △북한에 나포 직전 격침 등의 구상을 적었다. 연평도 이송과 관련해선 “민간 대형 선박” 등을 이용한 뒤 “실미도 하차 후 이동 간 적절한 곳에서 폭파”라고 적었다. 일반전초상 처리 방식으로는 “수용시설에 화재 폭파” “외부침투 후 일제히 사살(수류탄 등)” 등의 방식이 열거됐다. 포고령 위반자, 체포 대상자를 수용시설에 수감하다가 해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폭사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12월3일 밤 내란 세력이 추린 체포 명단은 이재명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양경수 위원장 외에 김민석 총리,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이학영 국회부의장, 박찬대 의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조해주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였다. 노상원 수첩에는 이외에도 민주당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유시민 작가, 방송인 김제동씨, 전 축구선수 차범근씨 등 다수의 이름이 등장한다. 내란이 성공해 비상계엄이 유지되고 저항이 강렬해져 포고령 위반자가 늘어나면 수용소에 있던 무고한 시민들은 노상원 수첩에 적힌 방식으로 처리됐을 가능성이 크다.